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전라남도 장성(長城)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명(才名)이 높아 ‘천하문장 장성기동(天下文章 長城奇童)’으로 이름났다. 10세(1519)에 호남의 관찰사로 있었던 모재 김안국(慕齋 金安國)에게서 ������소학������을 배웠다. 18세에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 등과 함께 기묘사화로 인해 화순 동복에 유배되어 있던 신재 최산두(新齋 崔山斗)에게서 ������이소(離騷)������ 등을 배웠다.
19세에 성균관 시사(試士)에 나아가 <칠석부(七夕賦)>를 지어 그 이름을 크게 떨쳤으며, 1531년 성균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李滉) 등과 더불어 강학하며 교유하였다. 154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에 등용되었으며, 이듬해에 12인이 뽑힌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543년에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어 당시 세자였던 인종(仁宗)과 사제지간을 맺었다. 이때 세자는 묵죽도(墨竹圖)를 그려 스승인 김인후에게 주었다. 또한 선생은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한 제현(諸賢)의 원한을 풀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해에 부모의 봉양을 위해 옥과현감(玉果縣監)으로 나갔다.
1544년 중종이 세상을 떠난지 일 년이 채 못되어 인종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을사사화(1545)가 일어난 뒤에는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1545년부터 1560년까지 약 15년간 고향 장성에 거주하며 학문에 힘을 쏟았다. 그는 도학(道學)과 절의(節義)와 문장(文章)을 두루 갖춘 인물로 높이 평가받았다. 1796년에 성균관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김인후의 대표작인 <소쇄원48영(瀟灑園48詠)>과 같은 작품은 오늘날 소쇄원 창건 당시의 모습을 살피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하서와 고봉이 만나다
1558년 겨울 기대승과 태극도설을 강론하다.
1559년 李恒(1499-1576)에게 편지를 보내 태극음양이 一物임이 잘못되었음을 논박하다
기대승과 사단칠정설을 강론하다.
羅欽順(1465-1547)의 人心道心說을 논박하다.
<河西年譜>
1558년 7월 김인후를 만나다.
상경길에 一齋 李恒을 만나 太極圖說에 대해 논하다.
10월 문과을과에 합격하다.
秋巒 鄭之雲(1509-1561)이 찾아와 <天命圖說>에 대해 강론하였다.
<高峯年譜>
일재 이항은 일찍이 고봉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에 ‘태극과 음양은 한 물건’이라 하였으며, 소재 노수신도 나정암의 학설을 주장하여 ‘인심과 도심이 體用’이라 하였다. 하서는 이에 ‘인심과 도심은 전적으로 動하는 곳에 나아가 말한 것이고, 태극과 음양은 이미 道, 器의 구분이 있으니 한 물건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퇴계선생의 사단칠정 이기호발론이 나오자 기대승은 오래 의심하여 늘 선생에게 와서 긴요한 것을 질문해서 선생의 허락을 얻은 뒤에야 자신감을 가졌다. 하서가 별세하자, 고봉은 마침내 편지를 보내어 왕복하였는데, 선생의 학설을 많이 사용하였다.
『하서전집부록』 권1
이곳에 하서선생이 계신데 장성(長城)에 사십니다. 저의 집과는 단지 오우명(五牛鳴)의 거리이므로 제가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와서는 이 선생께 의지하여 전에 배운 것을 강습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께서 갑자기 1월 16일에 병을 만나 돌아가시니, 사도(斯道)에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있겠습니까마는 저의 불행은 더욱 심합니다. 늘 생각하다가 의문나는 것을 여쭈지 못할 때마다 선생 생각이 자주 나는데 뵈지 못하게 되었으니,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슬픔을 참으려 하지만 스스로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하서 선생과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이니 부음(訃音)을 듣고는 틀림없이 상심하고 애통해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양선생왕복서』권1
기대승에게 주다
꿈속에서 밝은 구슬 어지럽게 떨어지는데 亂落明珠醉夢間
자네는 명산을 또 찾는다고 하네 聞君又欲向名山
이몸은 예전부터 자연에 의지하고자 했지만 此身早寄煙霞想
병탓에 청학에 사는 신선이 되지 못한다네 靑鶴仙蹤病未攀
<贈奇明彦大升> 『하서전집』권7
고봉 기대승에게 보내다
서로 만나면 늘 정담 나누지 못하고 相逢每未盡情談
헤어진 뒤에 아득한 남쪽으로 눈길 보내네 別後悠悠目送南
더구나 달밝고 서리 이슬 내리는 밤이면 且況月明霜露夜
더더욱 잠 못드니 그대 생각 어이 견디리 度更無寐思何堪
<寄高峯>『하서전집』 권7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 1527-1572)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발췌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3권)을 편찬하는 등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32세에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었다.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로 유명하다.
[출처] 기대승 [奇大升] 네이버 백과사전
理氣는 무엇이고 四端七情이란 또 무엇인가?
四端 - 惻隱之心 七情 - 喜怒哀樂愛惡慾(懼)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
儒學 性理學 道學
조선 사대부들의 문학관
文以載道
최자(崔滋, 1188-1260)
‘글이란 道를 밟아 가는 문이라 하면서 常道에 맞지 않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
→ 글이 道를 나타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장을 짓는 데에는 사리에 맞는 말을 쓰는 것이 道를 나타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뜻
정도전(鄭道傳, 1342-1398)
‘文이란 道를 싣는 그릇이다. 載道之器’
→ 人文이 그 道를 얻으면 詩書禮樂의 가르침이 천하에 밝혀진다고 하였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
‘문사는 도를 싣는 그릇이다. 文辭 載道之器’라하여 문장이 道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의 문학관을 피력하였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
‘經術이 곧 문장의 근본이다’
→ 經術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는데서 참된 문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김시습(金時習1435-1493)
‘문장이 道에 비해서 높은 것일 수는 없다’
湖南의 溪山風流 精神
賞春曲 - 丁克仁(1401-1481)
紅塵에 뭇친 분네 이내 生涯 엇더한고
녯 사람 風流를 미가 미가
天地間 男子 몸이 날만한 이 하건마는
山林에 뭇쳐 이셔 至樂을 모를것가
數間茅屋을 碧溪水 앏픠두고
松竹 鬱鬱裏에 風月主人 되어서라
세상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나의 생활 어떠한가
옛 사람들의 운치있는 생활을 내가 미칠까 못미칠까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 나만한 사람 많건마는
왜 그들은 자연에 묻혀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가
몇칸 안되는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놓으니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우연히 읊다
春到山中亦已遲 산속에 봄이 늦게 찾아와
桃花初落蕨芽肥 복사꽃 막 지고 고사리 싹 돋아나네
破鐺煮酒仍孤酌 깨진 솥에 술을 데워 혼자서 마시고
醉臥松根無是非 취해서 소나무 밑에 누웠더니 시비가 없네
<偶吟>『고봉집』 권1
매화 몇 가지가 늦게 피었기에 장구를 지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
올해는 봄이 하도 늦어서 今年春最晩
삼월에야 매화가 피었네 三月梅花開
또 다시 차가운 눈내리니 更値寒凝雪
시름이 한가득 이끼에 떨어지네 仍愁落滿苔
술 깨고보니 매화향기 소매에 남아 있어 酒醒香裛袂
꿈깨도 술잔 속에 비치네 夢斷影交杯
멀리있는 그대에게 주고 싶어 萬里思相贈
가지에 달라부터 홀로 생각해보네 攀條首獨回
<梅花數枝 開亦最晩 吟成長句 用破幽寂> 『고봉집』 권1
그윽한 집에 살면서 여러 가지를 노래하다
집은 작아도 깨끗하고 시원하여 小堂淸且爽
꽃과 대나무도 성긴 발에 비치네 花竹映疏簾
흰 돌을 깔아 길을 만들고 白石鋪開路
푸른 솔가지 꺾어 처마를 때웠네 靑松折補簷
걸상에 앉으니 서리맞은 국화향기 풍기고 榻香霜菊動
술잔을 기울일수록 귀가 뜨겁네네 耳熱酒杯添
술마시고 나니 시상이 떠올라 醉後詩情發
붓끝 닳도록 미친듯이 노래한다네 狂吟筆退尖
<幽居雜詠> 『高峯續集』권1
술마시고 아내에게 주다
백년도 지금은 꿈속만 같아 百歲如今醉夢間
기쁘게 놀면 어느 곳이든 편안치 않으리오 歡遊何處不淸安
밤이면 오직 그대와 함께 등잔불 비추면서 夜來燈火唯君共
귓속말로 소곤소곤 늘그막이 어떨지 점쳐보네네 細討幽期卜晩閑
<醉贈細君> 『고봉집』 권1
고봉 기대승 선생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機
勢
死
文學 歷史 哲學
人文古典
省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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