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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의 글마당

향기의 글(가끔은 떠나 보내고 ,...)

나도 떠나라
이병준

앞 시간에는 떠나려는 남자의 속성이 ‘real’ 과 ‘unreal’ 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살아있는 느낌을 갖고자 하는 마음, 물론, 이것은 남자 뿐 아니라 여자도 동일한 속성입니다. 그렇게 떠나려는 속성이 있고, 그래서 가끔은 살아있는 느낌을 갖고자 한다면 가끔 떠나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것이 훨씬 좋을 겁니다. 사람은 가끔 홀로 있을 때 내면의 창조성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홀로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아이디어 생겨난다고 하고, 칸트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산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것을 위해서라도 아내들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편들도 아내를 위해 떠나보내는 시간을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Let him Go!!
남편이 집을 떠날 생각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잡을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고 아예 잘 보내줄 생각을 하십시오. 여행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요, 이 때 관광하게 하면 역효과 납니다. 홀로 가게 하고 홀로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자란 때론 홀로 있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가득 차게 되어 있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는데도 충전되는 묘한 습성이 있습니다. 홀로 있기보다 여럿이 함께 있는 내적 에너지가 충전되는 여자와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알아서 가라 하면 문제가 됩니다. 남자들이 알아서 하는 일엔 젬병이기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떠날 수 있기 때문이죠.
방안을 제시할 때 “여행이라도 해 봐.” “등산을 하든지...” “남들은 알아서 잘만 하더만 당신은 왜 그래?” 와 같은 말은 금물이다. 또, “내가 동행해 줄 테니까 그냥 따라와.” 도 별로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남자들의 유전자 속에는 마누라 말은 절대 듣지 않는 일명 ‘청개구리 유전자’ 가 들어 있으니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내가 말을 하고 나면 싱거워지고 싫어지고 심하면 짜증까지 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이유는 제가 다음 시간에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접 제시하는 대안보다 권위있는 제3자의 말이나 방송매체, 적절한 통계 등을 이용하면 좋습니다. 언젠가 제 책 <남편사용설명서>와 <아내사용설명서>를 읽었던 한 아내가 자기 남편으로 하여금 꼭 <아내사용설명서>를 읽게 하려고 책을 코 앞에 들이밀었는데 죽었다 깨나도 안 읽더랍니다. 화장실에 넣어주기도 하고, 거실 탁자에 두기도 하고 침대맡에 두기도 해 보는데도 쳐다도 보지 않아 속상하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분에게는 제3의 권위를 이용하라고 코칭해 주었습니다.

“여보! 이 책 있잖아? 제목이 재미있어 샀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포털 사이트에 ‘화제의 책’ 코너에 며칠 간 뜨는 거 있지. 되게 반갑더라구. 그저께 신문엔 남자들의 수다라는 기사가 났는데, 그 기사도 이 책 내용을 꽤 많이 인용했더라구. 역시 내가 책 고르는 안목이 있지.” 정도만 이야기 하라고 했습니다. 단 주의사항은 “그러니 당신도 읽어봐” 가 아니라 정반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당신은 절대 읽지 마. 싱거울 거야. 솔직히 당신이 쓰면 이 책보다 훨씬 나을 것 같더라구..” 까지만 말하라고 했죠. 그렇게 툭 던지듯 말하고 빠지라고 해 놓고 TV위에 두었는데, 슬며시 꺼내서 읽기 시작하는 남편을 보고 속으로 많이 웃었다고 했습니다. 그 남편의 ‘청개구리 유전자’를 자극한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말하지 말고 흘리듯 말하되 가급적 홀로 떠나는 도보여행 같은 것을 추천하십시오. 가령 “잡지에서 봤는데 황안나 씨라고 일흔이 넘은 도보여행가가 있대. 국토종단을 몇 번씩이나 하고 한 달에 몇 번씩 도보여행을 간다네. 도보로 고집하는 이유가 여행을 참맛을 느낄 수 있대. 홀로 걷는 일을 통해서 마음을 비우는 일도 가능하고 사람들을 통해서 아직도 세상이 살아갈 만 하다는 것을 느낀다나. 그 이야기를 보니 내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라는 정보나 “요즘 CEO들이 나홀로 산행을 가는 추세래. 예전엔 도전, 목표달성, 성과향상 이런 것 때문에 등산을 했는데,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고 하네. 아예 하루를 결근하고 산에 가는 CEO들도 있대..” 라는 정보를 흘리게 되면 남편의 내적 안테나에는 ‘Real’이란 불이 켜지게 되고 그날 틀림없이 배낭을 찾든지 아니면 작은 배낭을 사오든지 할 것입니다.

이 때 돈 들어간다고 불평하거나 푸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나가야할 사람은 나갔다 와야, 그래서 홀로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나야 내적 에너지가 충전되고 그러고 나면 나에게 더 큰 보상으로 채워질 것이며, 조만간 그 도보여행에 함께 가자는 초청장을 정식으로 보내올 것이니까 말입니다. 왜냐하면 남자란 자기를 기분 좋게 하는 대상이라면 지금 당장 간이라도 빼줄 수 있는 단순한 족속이니까요.
그리고 남편이 도보여행을 출발할 때 ‘이 남자 제대로 여행할까? 딴 짓하지는 않을까? 돈만 낭비하는 것 아닐까?’는 걱정을 해도 좋다. 그것들이 나를 ‘Real’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니 말이다. 어차피 인생은 모험하러 태어난 것 아니던가요? 배는 항구에 묶어둘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를 만든 목적은 항해에 있지 묶어 두는데 있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