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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의 글마당

이태리 카타콤베 이야기

로마에 카타콤베는 약 25곳 정도가 발굴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직 발굴중인 곳도 있는데 20군데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카타콤베(지하 공동묘지)는 원래 일반 공동묘지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으면서 군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공동묘지를 파고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의 대 박해는 네로 황제와 몇몇 황제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특히 네로황제 때에는 기독교의 거목인 베드로와 바울이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도 카타콤베에 잠시 묻혔다고 합니다.

 네로황제가 통치하는 당시의 로마는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와 로마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석조 건물로 대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네로는 남부지방으로 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때마침 로마 시에 큰 불이 나고 맙니다. 급히 돌아와 화재사건으로 불리해진 네로는 계책을 세우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대 화재의 범인으로 뒤집어씌웁니다. 분노한 로마시민들 앞에서 기독교 대 박해가 AD64년부터 시작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카타콤베로 핍박을 피하여 모여와 점점 땅 속을 파고들게 되었습니다. 군인들도 알고 체포하러 들어오게 되었고 결국 기독교인들은 점점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추정하기로는 전체 지하굴이 약 800Km 이상이고(서울 부산 왕복거리입니다.) 600만구의 시신이 있을 것 이라고 합니다

1939년에 독재자 무솔리니가 신도시를 개발하다 발견된 「도미틸라 카타콤베」였습니다. 지하 굴의 길이가 19Km이고 20만구의 무덤이 있음을 추산 한답니다. 지금은 전깃불을 켜 놓았지만 당시엔 얼마나 캄캄했을까요? 우린 겨우 1, 2층만 보고 나왔지만 정말 답답했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협소한 길과 가끔 아주 구부려야 지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군병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군데군데 둥그런 돌문도 해 놓았습니다. 곡물창고, 죽은 이를 두는 공간, 화장실, 예배 공간, 죄수를 벌하는 곳 등이 모두 오밀조밀 다 들어 있습니다. 굴속에도 프레스코 기법 그림이 있는데 예수님과 두 사도를 그려 놓았습니다. 대 박해는 18번 정도 있었고 황제가 바뀔 때 마다 박해가 없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핍박이 약할 때에는 지하에서 파낸 흙을 로마 관청에 팔기도 했습니다. 지하의 흙에는 석회성분이 많아서 시멘트 역할을 하여 굵고 큰 벽돌을 만들어 대규모 건물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카타콤베가 지하 수 십층으로 파낼 수가 있는 것도 석회질이 풍부해 습한 공기가 들어갈수록 단단해진다는 것입니다. 파낼 때는 무른 땅이라 약간 쉽게 파내지만 공기가 빨려 들어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하게 굳어가게 되어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수없이 많은 인구가 피난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