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 “왜?”는 신기하고 기특하기만 하다. 하지만 부모는 곧 깨닫게 된다. 그 “왜?”가 일상이 되는 순간,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싶다는 것을. 우리는 궁금한 것은 잘 참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피터 메다워 경은 한때 “나는 어떤 것이 이해가 안 되면 몸이 불편해진다”고까지 말한 적이 있다. 호기심이 충족되면 우리는 만족감을 느낀다. 알면 즐거워지는 것이다. 평생을 지식 탐구에 매진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한 번 물어 보라. 왜 그런 공부를 하시냐고? “재밌으니까!”
사실 인간의 호기심(curiosity)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 뱃속에서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다른 동물, 특히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것 중 하나는 미숙한 채로 뱃속에서 나와 부모로부터 더 오랫동안 양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뇌는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채워 나간다.
다른 종에 비해 덜 준비된 채로 태어나지만 몇 년 동안의 양육 기간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지식도 배운다. 갓 태어난 사슴이 몇 초 내에 풀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갓 태어난 인간 아기가 수 초 내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응애’ 하고 우는 것뿐이다.
침팬지의 경우에도 한 살만 되면 나무를 자유자재로 탈 정도로 성장한다. 반면 돌잔치의 주인공들은 겨우 혼자 걸음마를 할 정도이다. 처음 일 년 만을 본다면 인간 종은 다른 종들에 비해 유약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우리는 전혀 새로운 길을 걷는다.
우리 종이 왜 이런 생존 전략을 진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인류의 직립보행과 관련되어 있다. 어느 날 나무에서 내려온 우리 조상은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출산과 관련된 여성의 해부학적 구조가 달라졌다.
그 변화로 인해 산도(태아가 나오는 길)가 좁아져 더 이상 태아를 자궁 속에서 오랫동안 키울 수 없게 된다. 머리가 큰 아이는 산도를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미숙한 상태로 아기를 낳은 후 양육 기간을 오랫동안 갖는 방식으로 생활사를 진화시켰다. 안전한 엄마의 자궁 속보다는 비록 위험천만하긴 하지만 훨씬 더 흥미로운 자극들로 가득 찬 바깥 세계를 더 빨리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준비도 없이 세상에 나올 수는 없다. 흥미진진하고 변화무쌍한 자극들을 잘 처리할 수 있는 기본 장치들은 무장하고 나와야 한다.
추론 능력, 언어 능력, 감정 등이 그런 것들이다. 바로 그런 능력들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세상의 수많은 자극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심리장치이다. 인간의 끝없는 궁금증은 우리를 매우 특별한 종으로 만들었다.
인간의 지능은 생존에 필요한 지식뿐만 아니라 생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고도로 추상적인 지식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침팬지는 나무에서 발을 헛디디면 바닥에 떨어져 몸을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예측도 할 수 있지만, 뉴턴처럼 몇 kg이 몇 m 높이에서 떨어지면 몇 m/sec의 속도로 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알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이런 지식은 자연세계가 어떤 법칙들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침팬지와 인간 모두 진화의 산물이지만 오직 인간만이 진화의 원리를 탐구할 수 있다. 이 모든 지식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성은 어떻게 운행하는지, 생명은 어떻게 진화하는지, 물질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호기심은 배움을 더욱 재밌고 빠르게 만드는 하나의 심리장치라 할 수 있다. 뭔가를 새롭게 배울 때를 떠올려 보자. 가령,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배운다고 해 보자.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있을 것이고 골치도 아플 것이다.
만일 당신이 조물주라면 이런 어려움을 덜어내기 위해 어떻게 인간을 개조하겠는가? 영리한 자연은 ‘호기심’이라는 재밌는 장치를 인간의 마음속에 장착시킨 것 같다. 어렵고 끔찍한 학습과정을 즐거운 시간으로 변환시키는 마법 장치. 이것이 호기심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호기심이 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점점 사그라드는 것 같다. 중학교에만 올라와도 질문을 유도하는 선생님과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 새라 학생들은 바닥만 쳐다본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드러내려면 옆 친구의 비아냥을 견뎌내야만 한다. 배움의 재미를 채 느끼기도 전에 강요된 입시로 우리의 호기심은 억눌려지고 잊혀졌다. 모든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 많던 호기심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어른이 되면 세상과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메말라 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통념처럼 호기심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 해보자. 그러면 인류가 이룩해 놓은 찬란한 문화, 과학, 교육, 종교, 제도, 정치 등은 당장 미스터리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성취가 아이들만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단 말인가?
몇 년 전 하버드 대학교의 한 노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팔순을 앞둔 그였지만 마치 막 부임한 신임교수처럼 신이 나 있었다. 현재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연구하고 있는 주제, 쓰고 있는 책 등에 대해 상기된 목소리로 자세한 소개를 이어갔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믿고 의지했던 어떤 이론에 대해 최근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게 되었다는 그의 당당한 고백이었다. 팔순의 과학자에게 뭔 새로운 얘기가 있겠느냐는 내 편견이 보기 좋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바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이었다.
그는 과학자 중에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유일한 사람이지만, 글쓰기가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나이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특별 과외를 받기도 했었고, 형편없는 수학 실력 때문에 학부생의 틈에 끼어 대학 수학을 함께 수강하기도 했었다.
선진 과학계와 비교했을 때 가장 선명한 차이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학자로서의 수명이 더 길다. 공부를 우리처럼 그리 쉽게 놓지 않는다. 젊었을 때만큼은 아닐지라도,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 반면 우리 학계에서 50대, 60대에 전성기를 누리는 진짜 연구자를 찾기란 정말 힘들다.
직장인의 경우에는 어떤가?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자신의 일에 대한 호기심이 더 깊고 왕성해지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2001년도 한국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람들의 월 평균 독서량은 1.59권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직장인의 경우 1.85권이며 종류별로는 대개 소설과 실용서 위주이다. 책을 읽지 않고도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비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잊혀진 호기심을 되살리고 유지·발전시켜줄 동인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바로 열정(passion)이라 생각한다. 열정은 호기심을 활활 타게 만드는 장작과도 같다. 호기심과는 달리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생을 통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일종의 태도이다.
생존과 짝을 찾기 위한 열정은 누구나 있지만 그 밖의 다른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지는 그런 열정은 아무나 갖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누구나 배울 수는 있다.
인류의 역사를 여기까지 끌어 올린 위인들은 하나같이 그런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우리처럼 호기심을 가진 보통 사람이었지만 우리와는 달리 어려움이 생겼다고 금방 그것을 집어 던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호기심의 사람, 그리고 열정의 사람들이었다. 아니 호기심을 평생 동안 지필 열정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은 1838년에 이미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을 공책에 끄적거리고 있었지만 그 후 20년씩이나 발표를 미루고 생각을 숙성시켰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과정에서 그는 거의 8년 가량이나 보잘것없는 생물인 따개비 연구에 자신의 삶을 투신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대가의 최후 연구 주제는 다름 아닌 지렁이라는 미물이었다. 호기심과 열정의 사람, 그들이 우리의 진정한 영웅이며 인류 역사의 주연이다. 그들은 인류의 위대한 선생이지만 평생을 학생처럼 살았던 이들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가수다’라는 방송이 화제지만 ‘나는 학생이다’라고 외치는 이들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 공동체는 더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저명한 신경학자 라마찬드란이 고백했듯이 성공을 위한 가장 손쉬운 전략은 그런 사람들 옆에 지내면서 호기심과 열정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일지 모른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다윈의 식탁 저자
'손님과의 글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봉님의 글(해 뜨는 때부터 ) (0) | 2011.09.03 |
---|---|
향기의 글(기승전결(起承轉結) (0) | 2011.09.02 |
향기의 글(역경을 이기는 ) (0) | 2011.08.31 |
서봉님의 글(尊德性 道問學) (0) | 2011.08.31 |
ㅅ서봉님의 글(길들이는 시간 ) (0) | 2011.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