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오신 누님은 매형과 함께 하룻밤을 잘 보내시고 아침 에 내가 악기 연습하는 것을 보시며 봉선화” 곡을 하는 데,
누님께서 함께 부르시며 아주 옛날 우리 형님께서 바이 어린을 하시며 누님이 이 노래를 부르도록 하셨다고 회상을 하시는 것이었다.
형님은 나와 21년의 차이로 형제이고 누님이 세 분이신데, 지금 이 막네 누님은 나와 10년 사이다. 그래서 누님은 내가 태어나는 덕에 막내를 면하시고 또 남동생 터를 팔아 아버지의 사랑을 톡톡하게 벋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기도 한다.
내가 어린적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들은 형님이 나의 아버지로 보아주시기도 한 기억이 난다. 그 만큼 형제간으로 보기엔 나이 차가 컸다는 생각이다.
그런 우리 형님은 일제 때 남양군도(인도차이나)지방에 징용으로 끌려가신 것이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 전상으로 심한 정신병을 지고 오셨다. 세상물정을 모르며 형님 댁은 물론 우리 집안이 풍지박살이 난 연유로 나는 알고 잇다. 정신은 나갔어도 맑은 정신이 돌아오면 바이어린을 찾아 연주도 하던 어린 날 기억이 새롭게 누님의 봉선화 노래가 내 가슴을 다시 울려주는 아픔으로 피어난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큰 아들의 기막힌 한을 가슴에 담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늘은 내가 악기를 배우는 날이라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빛고을 건강타운으로 모시고 갔다.
본관 1층에 물리 치료실부터 상담실, 당구장을 거처 2층의 춤,요가등, 체육관 동으로 이동 베트민 턴을 비롯한 수영, 헬스장등을 차례로 보시고 노인 천국이라며 부러워하신다.
어께를 부축하여 드리고 지팡이를 이용하시지만 피곤하신 듯, 쉬어가자고 하신다. 중간마다 벤치시설에 쉬면서 갖이고 간 음료수도 드시며 오가는 분들이 모두 모두 젊은 사람들로 보인다고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이 건강타운에 종사하는 직원도 있지만 회원은 61세로 가입이 된다고 설명을 하여 드렸으나 누님 깨서는 이렇게 훌륭한 시설로 만학의 열정이 정신적 젊음으로 표출 된다는 점을 강조 하시는 뜻으로 받아드려젔다.
다시 공연장 쪽으로 가서 마침 합창을 연습시간의 단원들에 아름다운 선율을 관람석에서 잠시 경청을 하기도 하였다.
자원봉사원석에서 식권을 사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면서 아주 질서정연한 배식과정이며 알뜰히 챙겨주는 식탁을 맛있게 잘 드셨다고 좋아하신다.
내가 1시부터 한 시간 악기수업을 받는 동안 널따란 정원의 그늘 막에서 두 분이 쉬시도록 하였더니 공기도 좋고 조용한 숲속에 소풍을 나온 기분으로 즐거웠다고 자랑을 하신다.
저녁은 아들네 집으로 가서 모처럼 광주에 오신 고모님을 위하여 며느리 손자들이 인사도 드리며 외식으로 푸짐한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누님은 우리 집이 크게 보엿는 데, 아들네 집을 다녀오시더니 아주 작아 보이신다고 웃으신다.
이렇게 하루를 좋은 날로 보내시니 우리들 내외의 마음이 참 기쁨이고 또 언제 이런 날이 있을까 싶기도 하여 더 잘 해드리길 바래 본다.
2010년 6월 8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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