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아들 혼인식장을 보러 간다.
아침 7시에 나가 송정리에서 8시 26분차를 탔다.
오늘갔다 오는 길, 무궁화호를 타고 간다.
가면서 책도 보고 음악도 즐기면서 달리는 차창넘어
봄 풍경이 정겹기만하였다.
노트북을 들고 가려다가 그냥 접었다.
기차내도 카페에 가면 컴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카페를 찾아 컴에 앉는 다.
동전 5백원 짜리를 꿀꺽 먹어 삼키곤 그만이다
자리로 다시 돌아와 책을 본다.
신태인를 지나는 곳에서는 고향의 어린날 추억들이
영상처럼 떠올라 울기도 하고 그리운 얼굴들을 찾아
보기도 하였다.
신태인역이다.
그 시절 우리친구가 고등학교를 서울로 가게되어
야간열차를 타려고 그의 아버지와 승강장에서 일이다,
기차가 도착하는 순간 아버지가 들고 있는 가방을 순식
간에 날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그 가방속엔 입학 등록금이 들어 있었는 데,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 며
몸설이를 치다가 경찰에 신고를 하였지만,... 결국 영영
잃버린 돈,
나는 그 가슴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 보았다.
그 친구는 서울의 첫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오는 길,
친구의 정으로 나에게 나이롱 양말을 한 켤레 선물로
사다 주었다.
알록달록한 쫄쫄이 양말이 손에 쥐면 한 주먹안에 든다.
우린 면 양말만 신을 때다 한 번 신으면 뻥 뚫리는 구멍,
어머니는 바느질로 구멍을 메워 주신다.
하지만 그 나이롱 양말은 사시사찰을 신어도 구멍이
나질 않았다.
머리맡에 두고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렇게 오래 오래
신었던 기억이 난다.
참 신기하고 오져서 나는 얼마 동안을 신었던 그 양말,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랑하던 친구의 얼굴이다.
초등,중학교를 1등만 하였다.
백과사전을 통달하여 프랑스를 쪽 뀔 정도로 프랑스가
그 의 꿈이었다. 불문과를 지망하여 유학도 간 그 친구,
대학시절 결혼을 하였다. 딸을 하나 두었는데,
그 후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고등학교 대학시절 나는 서울에 가면 그 친구와 어울려
전차를 타고 시내 구경을 하며 신신백화점도 가보곤 했다
그리고 음악감상실에도 가고 서점도 돌아 다니며 둘이는
나무에 그림자처럼 함께 하였다.
조그마한 키 얼굴이 소녀처럼 예쁘고 마음씨가 고왔다.
지금도 보고 싶다.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 살면서 나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 까,...?
신태인역은 KTX나 새마을호는 그냥 지나치는 역이다.
하지만 우리들 어린시절은 고향에 발전소가 위치한 덕에
금행열차들이 쉬어 가던 역이었다.
지금은 이 역이 아주 촌스럽고 초라하게 보인다.
서울이다,
선릉역서 리마다서울호텔을 찾았다.
지방에만 근무하던 후배는 퇴직을 하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2남 1녀를 둔 후배의 아들이 결혼을 한다.
아들 며느리가 약사란다.
훌륭하게 이루어지는 자녀들 일로 부럽기만 하였다.
식장은 호화롭고 웅장하였다.
축하를 마치고 좋은 일로 복이 가득한 후배를 위하여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고 평안한 생활을 비는 인사를 주고
돌아 온다.
집에 도착하니 밤 열시다.
읽고 있는 고전은 오늘로 마치려 했는데 몇 장만 보고
접혀 있다.
피곤하여 씻고 자려는 데 아내가 저녁 걱정을 하기에 그냥
자자고 말리고 자리에 든다.
2011년 4월 24일 일요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