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0년 7월에 한전 고흥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 때 관활에 7개의 출장소가 있었고 그 중의 박홍기소장이
2년전에 정년을 맞았다.
나와는 13년 차이 정도로 여겨진다.함께 근무를 할 때 부터
동생처럼 따르고 좋은 관계로 친분을 쌓앗다.
내가 퇴직을 한 후에도 가끔씩 소식을 나누고 찾아가면
아주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서로 환경이 다른 처지라 소식이 끊기고
자녀들 혼사시에 두 번을 만났다.
얼마전 빛고을 타운에서 아내가 배우는 합창반네 박 소장
부인이 나와서 반갑게 만나 근황을 알아 보고 부인이 다시
박소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그 쪽에서 초청을 하여
오늘 내가 방문을 하엿다.
원래 재직시부터 나무를 사랑하고 분재에 소질이 잇어 조경
분야에 눈이 밝은 박소장이다.
나주 봉황면 철야마을에 농장을 차리고 식물원을 경영한다.
천팔백평에 목조 구 한옥을 구입하여 내부수리를 아주 잘한
집이 대궐만 같다.
조용하고 경관이 좋은 터엔 조경이 아주 훌륭하고 녹차를 비롯
불루배리등,.. 각가지 좋은 나무가 가득하였다.
마을도 덕용산 마루에 멀리 나주 혁신도시지역을 비롯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명당에 틀림이 없다.
정원을 들어 서면 잔디가 마당에 카펱만큼이나 정결하게 깔려
있다. 동네가 전설이 묻혀잇는 듯, 조용하고 아담하여 이천
서씨 진주 정씨 제각들이 고풍을 자랑한다.
우리는 영양탕으로 유명한 지역이라 그 런 식당에서 약주에
추억담을 나누며 오찬을 즐겼다.
그리고 다시 동네 문화제를 두루 둘러 보면서 이런 곳을 찾아
별장처럼 살고 잇는 후배가 신선 만큼이나 풍류를 누려서
부럽기만 하였다.
돌아 오는 길엔 집에서 가꾼 마늘과 양파를 한 아름 담아주어
차에 싣고 돌아 온다.
오늘도 친절하고 정겨운 동생을 만나 큰 기쁨을 누리는 복날
이 되었노라고 적는다.
아래 시는 이천 기업 회장님을 찬양하는 글로 카페에서 옮겨 온 글이다.
錦下 徐相錄님을 위한 獻詩 -
금성 산하 너른들 鐵冶마을에서
鐵의 정기 받고 태어나
평생 동안 鐵과 함께
鐵을 녹이고, 鐵을 깎고, 鐵을 다듬으며
鐵人처럼 살다 가신 님이여,
구한말에 나라를 잃은
桎梏의 일제시대를 살면서
무엇이 抗日이요
무엇이 克日인지
몸으로 보여주신 거룩한 님이여,
鐵冶의 흙속에서 자랐어도
봉황의 웅지를 품었으니
혼란의 20세기 초에
변화와 혁신의 실체를 갈파하고
일본으로 가신 님이여,
사람이 큰 뜻을 품든지
하늘이 큰 인물을 내릴 때는
어떠한 역경과 죽음의 구렁에서도
좌절하거나 결코 쓰러지게 하지 않으니,
고립무원의 일본에서
살아남으려는 버팀목은
그대 가슴 속 깊이 타오르는 큰 꿈이었어라.
봉황에서 일본 본토로 상륙하여
무일푼 한국 사람이 걷는 험난한 길을
절대 건너 뛸 수 없는 죽음의 길을 지나서
마치 용광로 속을 지나야 강철로 탄생하듯
의지의 한국인 표상으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鐵人이 되었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였듯이
큰 뜻에 몰두하는 집념이
월급을 받는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가는 기술자가 되는 강인한 소망은
마침내 기술자 정신을 터득하였어라.
이 정신이 무기요
이 정신이 신용이요
이 정신이 재산이었어라.
이 정신 위에 쌓은 재산으로
적진지 일본에서 "利川"라는 간판으로
利川의 시대를 문 열었으니
드디어, 봉황이 알을 낳은 것이요,
혼란의 2차 대전 전범국가 일본도
님의 기술자 정신 앞에서 고개를 숙였으니
일본을 이긴 것이다.
무엇이 克日인지 보여준 것이다.
1945년 해방된 조국의 재건사업을 위해
조국은 님을 부르고
부름을 받은 님은 조국의 공업 발전에
큰 획을 그었어라.
자본이라는 먹물 듬뿍 묻혀
전기, 방직, 철강의 큰 획을 그었어라.
그러나, 아쉽도다.
조국은 그대가 가진 자본만 보았지
님이 갈파한 기술자 정신이,
님이 터득한 匠人정신이
21세기의 무기인줄 몰랐구나.
이승만 대통령이
님을 장관으로 入閣시키려 했지만
님은 오직 기술자 정신을 앞세워 사양하고
고향 발전에 열과 성을 다하였어라.
60년대의 찌든 가난 속에
님의 애향심은 가뭄 속에 단비 같았고
님이 뿌린 장학의 씨알들 자라서
나라의 동량이 된 것을
모두가 자랑할 일 아닌가.
님이 가신지 어언 20여년이 지난 지금
님이 밝힌 조국 공업화의 불,
님이 몸으로 보여준 애국, 애향, 애족의 얼
님의 발자취 따라가며 글로 다 담아서
세상에 자랑하려 하니
부디 님의 영혼이 함께 하여
생전에 못다 한 말 다 쓰도록 도와주소서.
님의 혼 불이 살아나소서.
2008년 4월 일
시인 나천수 드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의 입구에 있는 만호정은
고려중엽에 창건되어 서씨,정씨,윤씨의 3개성씨가 관리하며 특히 이 정자에서
향약 및 동규를 시행하였는데 내용이 정사기와 철야대동계안에 전하고 있다
후배 박사장님의 집에서 한 컽 남긴 동영상
2011년 6월 15일 수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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