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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발자취

수필로 바뀐 일기(내가 살고 있는 집)

 

수필


                              내가 살고 있는 집

                                                                                   최 이 섭


우리가 가정을 꾸린 세월도 40년을 훌쩍 넘었다..

이 제와서 내 집 마련을 위하여 우리가 겪은 수난기를 적는다면

호랑이 담배 먹던 캐캐묵은 이야기나 다름이 아닐 것이다.

가끔씩 산에 올라 도심지를 내려다보면 아파트야 단독주택등,

사람 사는 집들이며 건물들이 옛날보다 얼마나 많아 졌는가,?

하지만 지금도 집이 없어 자나 깨나 집 장만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을 하여본다.

우리는 신혼을 맞아 금남로 원각사 뒷골목에 상하 방을 사글세로

얻어 살기 시작하였다.

부부 맞벌이를 하면서 오전만 근무하는 아내가 오후면 집에서

학생들에게 피아노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 금남로의 집세는 상당히 높은 지역이라 한 달 피아노

수입의 7~8십푸로 정도를 집세로 지출해야 했다.

그래도 내가 야간학교를 다니던 때라 등록금이며 생활비 마련에

다소 도움이 되었고 절약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아이들이 오는 집이라 피아노 소리며 문단속등의 이유로

주인 아주머니는 툭하면 우리들에게 방을 비우라고만 하였다.

방향은 서향집이라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고드름똥을 싼다고

할 말 큼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죽은 듯,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다.

그렇게 4년을 살다가 이사를 하여야 했다.

가는 집마다 피아노가 있다고 하면 고개를 흔들며 거절을 한다.

아내의 직장이 중앙유치원이라 금남로 인근에 자리를 잡아야만

아이들 모셔오기가 유리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 비싼 대인시장 건너 쪽에 독챗집을 얻어 반을 내주고

반을 우리가 쓰는 집에서 피아노를 해 보았다.

그러나 타산이 맞지를 않아 피아노를 정리하고 광천동 지금의

야구장 뒤편으로 울타리도 없는 부록크 주택 12평짜리 하나를

살 수가 있었다.

이 집을 사서 매주 주말이면 인부를 얻고 자재를 사다가 아내와

작업을 하여 완공을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주택부지가 국유지라는 것이었다.

물론 싼값에 집을 사기 위하여 내가 국유지라는 것을 미리 알고

매입을 하였다. 그 후 세무서와 시청을 오가며 1년여 만에 우리

땅으로 불하조치를 받아냈다.

여기서 2년을 살다가 우리는 좀 더 큰 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할

수가 있었다.

직장을 그만 둔 아내는 빚을 내어 다시 피아노를 사고 학생들을

모아 지도를 시작하였다.

골목도 깊은 한적한 주택가였다. 어느 날 옆집에 살고 잇다는 젊은

청년이 찾아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피아노 소리가 방해가 된다.

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미안하고 답답하여 불럭 울타리를 높이고 방음장치랍시고 군용

담요를 사다가 문을 때려 막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파출소에서 순경이 아내를 연행하는 변을 당하자

아이들이 우리엄마 잡혀간다고 울고 난리가 났다.

나는 오후에 퇴근을 하여 파출소로 가서 피아노 소리를 내지 않겠

다는 각서까지 쓰고 집으로 돌아 왔다.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천정만 바라보며 울분을 삭여야 했다.

고시공부도 사람이 살자는 수단이라면 피아노지도 역시 우리에겐

유일한 생업수단이 아닌가,

아내는 내가 옆집으로 쫓아가서 싸움이라도 하라는 눈치였지만

참고 말았다.

내가 저야 한다고 아내를 달래며. 피아노를 치우자, 고 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기회가 와서 다시 다른 곳에 집을 짓고

아내는 고집스런 오뚝이처럼 피아노를 또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금 사는 집을 마련하고 나이도 들고 하여 피아노를

완전히 접고 말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뒷집엔 나무들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나무가

무성함에도 관리를 방치하여 나뭇잎들이 담장을 넘어와 십여 년

동안 잎들을 치우느라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5~6년 전부터 경매로 넘어가서 빈집에 오물이야 나무

가지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격어야 했다.

다행히도 작년에는 다른 사람이 이사를 와서 나무도 치우고

환경을 싹 바꾸었다.

벌써 1년이 되어가면서 이웃사촌의 정을 나누고 있다.

며칠 전 혼자서 지난날을 회상하여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남의 집에 살면서는 인내와 용기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웠고

내 집을 마련하고는 안정된 가정에서 새로운 도약의 날개를

펴고 가족들과 더 아름답고 값진 생활을 개척 하였노라,고

돌아보면서,...

내가 항상 억울하고 역겨운 일들을 당하며 바보스럽게만 살아

왔어도 우리 집만은 나를 이해하여 주 듯,

묵묵히 바라보며 편안한 안식처로 감싸 준 고마운 마음에 졸작의

시 한 수를 적어 둔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내 집마련의 꿈

피아노 소리 때문에

방을 빼라 던 그 말 한마디가

해묵은 거울 속에 恨처럼

밖혀있습니다.


작은 방,

아들딸들에 비린내며

문간 방,

장모님에 까만 가슴 태운자리,


지금은

외로운 듯, 조용한 집

오가며 정겨운 말 한마디를

늘 먼저 줍니다.


“공부방 다녀오겠습니다.”

아들딸들의 이름 불러보며

“아빠 다녀왔다”

막네. 손녀딸에겐

“할아버지 야”


늘그막에 철부지인 양,

거실, 방 공간에 사진을 걸고

화분들 진열을 해 두면,


때 묻은 가구들까지

구석구석 간지러운 듯,

소곤소곤 한 줄기 메아리로

뺨을 비벼오는 애무 짓


달팽이처럼

등에 업을 수가 없어

평생을 가슴속에 고마움으로

보담이고 살아야 할 樂園,


지금

내가살고 있는 집입니다.

 

2011년  6월 23일 목요일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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