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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발자취

김장 이야기

김장 이야기

 

 우리 집엔 3평정도의 목욕실이 있다. 편리하게 다용도실로 이용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김장철이면 여러 준비를 하는 작업장이 되어 주고 있다. 전에는 밭에서 실려 온 배추를 다듬고 자르고 소금에 저리는 일들을 하는 데 이 과정에서 쓰레기며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고 애를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우리들 두 식구만 먹도록 간편하게 조금씩 하고 자식들에게는 김장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며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내의 얼굴빛이 확 달라지며 말이 없었다. 수십 년을 이렇게 힘들여 한 일에 옆에서 협조는 못 해주며 눈앞에 작은 나의 불편 때문에 던진 이 말 한 마디가 큰 잘 못임을 뉘우쳐 보게 되었다. 어쩌면 아내의 심장에 큰 못을 치는 충격이고 가슴이 찢기는 아픔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더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대한 열정까지를 모독 한 처사임을 후회하게 되었다. 물론 젊었을 때처럼 거뜬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가 들어 힘든 일을 하면 다리와 허리가 아파서 고통을 겪는 점에 염려가 되어서 한 말이다. 하지만 어느 철학자의 책자 속에서나 찾는 말을 내가 잘 못 이해를 한 것이란 깨달음을 하게 되었노라,고 미안한 마음으로 넘기고 말았다.

 우리는 작년부터 배추를 소금에 절여진 상품을 주문하여 김장을 하고 있다. 올 해 구입량이 40포기라고 하는 데 큰 비닐 부대로 6 개로 나 누어 담아 와서 3층까지 운반을 하느라 아내가 고생을 하였단다. 구입처에서는 잘 씻어 보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내와 함께 수돗물로 다시 잘 씻어서 큰 소쿠리에 쌓고 물을 담은 함지박을 올려 둔 채 밤을 새운다. 그래야 내일 물기가 없는 배추에 양념을 비벼서 김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늦여름 영광으로 고추를 사러 간 일이 있다. 우리는 차를 몰고 가면 쉽게 고추를 사는 줄로 알고 갔지만 그게 잘못임을 알았다. 즉 영광 장날에 맞추어 가야 생산자들이 거둔 고추를 팔러 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간 탓에 길가에 고추를 말리고 있으면 파는 고추냐, 며 팔라고 했다. 그러나 파는 고추가 아니라 자기네가 먹기 위해 거둔 것이라며 장날에 오라고 충고도 받았다. 그래도 헛걸음 삼아 몇 군데를 돌아보았으나 헛수고 가 되었다. 우리는 지처서 어느 구멍가게를 들어가 얼음과자를 먹으며 주인아주머니에게 우리들 고추 사러 온 이야기를 하여 보았다. 그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여기 저기 전화를 하면서 어느 친구 집을 소개하여 그 친구로부터 고추도 사고 텃밭에 수박의 대접도 받았다. 그런 인연으로 몇 년간을 그 다정이 엄마라는 분을 통하여 고추를 사는 통로가 되었다. 그 뿐인 가, 여름엔 더위에 축 처진 생멸치를 사다가 항아리에 담근 멸치젓이 곰삭도록 하고 마늘 철엔 마늘 가을이면 친분을 통하여 깨까지 미리미리 구하는 아내의 정성이 대단하기만 하다.

 김장을 하는 날 아침 교인 몇 명과 친구 분들이 협조를 하여 준 다고 오신다. 이런 날 백수 남편은 자리를 비워주는 아량인가, 가사로부터 자유인가, 산행을 떠난다. 눈이 내리는 증심사 길은 마음도 가볍다. 오가는 등산객들 역시 나 만큼이나 밝고 힘찬 발걸음이다. 하산 길에 동료들과의 오찬자리 역시 모두가 김장철 이야기로 새 김치 맛에 침을 삼키게 하여 준다. 올 해는 배추 값이 싸고 양념값이 비싸다는 등, 절인 배추를 사다가 담근다는 등, 끝내고 자식들 집에 택배로 보낸 일, 어느 하나 뺄 수도 없는 진정 삶에 귀하고 값진 자랑들이었다고 여겨진다. 정작 그 일을 하느라 수고로움을 겪은 공로자에 대한 노고와 찬사는 빠져 있어 아쉬움을 느껴 보면서 속담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재미는 누군가 따로 본다,”는 말에 실소를 머금어 본다. 지금쯤 우리 집에서도 어머니들이 고된 김장 일을 하고 있을 터인 데, 창을 내다보니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산행을 마치고 집에 와 보니 김장이 끝나고 목욕실에 빈 그릇 들도 잘 정리가 되어 있다. 나는 아내에게 수고 했다며 위로를 하여 준다. 잠시 후 전화로 아들네집 불러 며느리에게 김치를 보내고 택배가 와서 딸네 집으로 배송을 마친다. 그리고 함께 사는 집 이웃들에 한 그릇씩 나누고 저녁상에 새 김치로 입맛을 돋우며 참 맛있다는 칭찬도 잊지 않고 하여 준다. 아내 역시 나에게 알토란같은 기름 값으로 보일러 가동을 하여 주어서 따뜻하게 잘 했다는 답례도 받는다. 그리고 김장을 하는 자리에서 한 교우 분이 자신의 바깥양반이 자기를 멍청이라고 한다면서 호소를 하여 옆에 분들이 흥분하며 그런 양반을 그냥 두느냐, 는 말로 그 양반 혼을 내도록 하라는 등 대응 방법들도 나온 것을 들려준다. 이 순간 나는 그만 먹던 밥알을 밖으로 퉁기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아내가 나를 따라 웃으며 왜, 웃느냐고 한다. 나는 엊그제 카페에서 보니까 어느 부부 싸움에 남편이 화가 나서 아내에게 집을 나가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그 부인이 너무 억울한 나머지 집을 나가겠다며 딱 하나 갖이고 갈 것이 있으니 들어주겠느냐, 다짐을 하자 남편이 하나쯤이야 하고 좋다고 대답을 하였고 아내는 큰 트렁크를 꺼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뿐이라면서 이 가방에 들어가라고 하여 남편이 웃고 화해를 했다는 이야기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나 역시 아내와 40년을 넘께 살면서 툭하면 홧김에 뱉어 버린 말실수가 수도 없이 많은 그 못된 부끄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속으로만 덮었지만 아낙네들의 김장이야기가 나의 묵은 죄과를 일깨워 주는 교훈으로 담아 보는 날,

 평생을 옆에서 함께 하여준 아내이자 세 남매를 키워낸 어머니요, 여섯 손자 손녀를 둔 얼마나 고마운 그리고 장한 어머니요 할머니가 아니던가, 오늘도 흙밭에서 탐스럽게 자란 배추들을 일 년 내내 준비한 양념들로 씻고 다듬고 으깨고 익혀서 담근 김치들 / 국화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란 시구처럼 이렇게 오지고 값진 우리들의 밥상에 알뜰하고 보배스런 양식인가. 김칫독에서 날이면 날마다 숙성을 하듯 우리 가정에 건강으로 행복을 일구는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옛말에 “일 년 농사 거두고 겨울 준비를 마치면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 하면 되었노라 발을 쭉 뻗고 잠을 잔다”는 뜻을 새겨 보면서

 아내가 차려준 저녁상에 새 김치 먹고 맴맴 우리들 와인 잔에 맴맴,...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미움도 내려놓고 성냄도 물리치고 / 바람처럼 물결처럼 / 그렇게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화상의 시조를 빌어다 읊조리면서 노년에 우리들 평안의 즐거운 김장 이야기를 노래로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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