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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의 글마당

향기의 글(담벼락을 찍은 사진)

구본창작가의 담벼락을 찍은 사진
박영택

이 작품은 구본창이라고 하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분이 잘 안가실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오랜 담벼락을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되고 낡은 담벼락 혹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간 상처들로 자욱한 장면입니다.
사실 일상의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피부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쓰는 사물의 표면도 길가도 담벼락도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표면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오래되고

퇴락한 자취들이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만들어 놓은 상처들이라고 말해볼 수 있습니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사물들의 피부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시간의 자취를 추적하는 것, 기록하는 것입니다.

구본창은 우연한 기회에 벽을 바라봤습니다.
그 벽은 때가 끼기도 하고 금이 가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흔적들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얼핏 봐서는 벼락이 내리치는 하늘 같기도 하고 구름이 드문드문 떠있는

풍경 같기도 하고 바닥과 벽의 경계부분들은 마치 수평선이나 바다를

 안겨줍니다. 그렇게 이미지는 고정된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다양한 것

들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담벼락의 표면을 응시하고 사진으로 찍었

습니다.
이것은 벼락 치는 하늘일까요? 바다일까요? 하늘과 바다의 풍경일까요?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보는 순간 그것이 벽임을 깨달았을 때 굉장히 낯선

당혹감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사진은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무척 낯설게 보여주는 것입

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이들은 늘 보는 것들을 똑같이 확인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약간 비틀어서 낯설게 보여주고 새롭게 보여

주고 그래서 그 존재를 새삼스럽게 '아 그런 모습 이었구나' '그런 것이

었구나' '내가 미처 보지 못했었던 어떤 것이었구나' 하는 것들을 문뜩

깨닫게 해주는 것들입니다. 바로 그것이 좋은 작업들입니다.

이 작가는 우리에게 벽을 다시 한번 안겨줬습니다.
일상에서 늘 보는 사사로운 벽, 하찮은 벽, 누구도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

거나 사진으로 찍으려고 생각하지 않았었던 아름다워 보이거나 그럴듯

하거나 장엄하거나 멋들어진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자잘한 금들이 가있고

드문드문 때가 끼어있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스쳐지나간 자취로

얼룩져있는 벽과 어두운 바닥은 문득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의 풍경을

연상시켜 주기도 하고 거대하고 심오한 바다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전원의 풍경들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본창은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벽을 다시 보여주고 그 벽을 통해서

무안한 상상력에 잠기게 하고 또 사소한 단서들이지만 그 단서를 길잡이

삼아서 이런저런 상상력을 복돋아 주는 그런 이미지 하나를 안겼습니다.

여러분도 주변에 우연하게 발견한 하찮은 벽속에서도 비밀스러운 이미지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멋들어지고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이미지들은 바로 주변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딛고 서있는 바닥과 벽에 늘 쓰는 일상의 사물 속에 매일매일

지나치는 공간속에.
문득 그것을 유심히 주위 깊게 바라보는 이에게는 축복 같은 이미지가

안겨진다는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구본창의 사진입니다.
구본창은 한장의 사진을 통해서 무심하게 찍은 벽면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미지의 아주 흥미진진한 무궁한 모험을 즐기도록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