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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발자취

친밀한 장난감.

추석연휴가 겹쳐 2주만에 아코디언 수강을 받는 날이다.

 

우리는 초급반이라 선생님은 "작은 별"이란 곡을 나누어 주고 지도를 하여

 

주신다.

 

20여명의 수강 생중엔 자칭 왕 초보이거나 나 같이 중급반에도 못 오른 낙제

 

생으로 눌러 앉은 사람등, 다양 한 편이다.

 

두 시간을 지도하시며 수강생을 지명하며 실기를 하도록 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기대에 들지를 않을 것이 뻔하지만 한 사람씩 친절하게

 

손을 잡아 주거나 음표에 이해가 쉽도록 한글 표시를 하여 주신다.

 

어린날 우리들 음악 선생님은 이정도의 답답한 상황이라면 당장 화를 내시며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리기도 하시던 일들을 상상 해 보기도 하였다.

 

수강을 마치는 시간 선생님께서는 오늘도 좋은 교훈을 주신다.

 

어르신들께서 악기를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장난감 하나가 생겨서 자랑

 

스럽게 만지고 외출을 하는 시간에도 집에 장남감이 그리울 만큼 가까히

 

하는 그런 애착심을 키워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 오는 길에 이 말씀을 몇 번이나 되색이며 긴장을 풀어주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옳거니,

 

바로 그런 것이라고 내심 환호성을 외처보기도 하였다.

 

우리들 농촌의 어린시절은 장난감을 팔고 사는 일이 있었을까,

 

그런 기억보다는 돌멩이로 공깃돌 놀이를 하고 땅바닥에 돌을 튕겨 이기는

 

사람이 엄지를 반원을 그려 땅을 따먹는 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나무를 깎아

 

총을 만들고 자치기 같은 놀이들을 하기도 하였다.

 

아이들과 자치기를 하던 중 양 끝이 창끝처럼 날이 선 나무로 눈을 맞아 내

 

눈까풀엔 상처를 입은 흉터가 있다.

 

지금도 생각을 하면 눈알에 그 나무가 맞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며 소름이

 

끼치 기도 한다.

 

나보다 부모님들이 얼마나 놀라셨기에 그 다음부턴 자치기 놀이를 아주 못

 

하도록 엄한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우리들 자식들 기르며 아들에게는 남성적인 자동차나 기차 같은 것이 었고

 

딸들은 인형들을 사주면 좋아하던 시절로 돌아보기도 한다.

 

한 편 요즘 손주들 장난감은 기술이 개발되고 경제적인 풍요로 움에 시대를

 

맞아  장난감들도 세련된 것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환경의 영향 탓인지, 빨리 싫증을 느끼며 자주 바꾸

 

어야  하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되는 듯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장난감을 통하여 어른들의 삶에 지혜를 하나씩 익히는

 

과정이 아닌가 하고 옆에서 세심하게 보아 준 적이 있었다.

 

또한 내가 잊지못할 소중한 장난감 추억 하나가 떠 오른다,

 

직장생활을 할 때다. 저녁 늦게 자려는 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순천에

 

근무하는 후배의 아들이 아파서 대학병원에 와 있다고 하여 달려갔다.

 

생후 8개월쯤 된 아이 머리에 주사 바늘을 꽂고 매달린 약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보기에도 고통인 것을 얼마나 아픈지 아이는 계속 울고만 있고 지켜 보다

 

못해 후배를 위안하여 주면서 병실을 나오고 말았다.

 

나는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그 길로 문방구를 찾았다.

 

밤이 늦어 가게들은 문이 닫히고 물건을 사려고 문을 두둘겨도 반응이

 

없어 몇 개의 점포를 돌다가 다행히 한 집에서 인형의 배꼽을 누르면

 

웃음소리가 나는 장난감 두 개를 사서 병실로 다시 찾아가 전해주고

 

돌아 왔다.

 

후배는 간밤에 아이가 장난감 덕으로 편안하게 잠을 잘 자더라는 답례에

 

나도 기쁨을 느낀 일이 떠올랐다.

 

퇴직후 한 동안 경사가 많았지만 점차 애사로 문상을 가는 빈도가

 

늘어가는 편이다. 그 중엔 배우자를 먼저 떠나 보낸 친지도 몇 분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광주공원을 산책하는 선배 한 분과 나눈 이야기가 귓전에

 

맴돌고 있다.

 

자신의 주위에 친구들도 다 떠나고 만날 사람이 없다는 그 말씀,

 

이런 외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이야 얼마나 클 것인가, 룰 돌아

 

보면서 옛날 병실의 아이가 장난감으로 아픔의 고통을 극복하던  먼

 

세월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노후에 정신적 길동무가 되어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혼자서도 위로를 받고 심신을 맑게 할 수 있으며 위풍당당하고 조화

 

로운 삶이면 좋겠다.

 

그래서 친밀한 장난감 한 두 개쯤 마련해 보자는 바램이다.

 

  

2010년 9월 28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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