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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발자취

빠꿈살이 47년,!

이 추위에 연료비를 절약하느라.

작은 방 하나를 치우고 잠도 자고 밥까지 차려다

먹는 삶에 놀이터를 차렸다.

어쩜,

우리는 어린날 빠꿈살이 같은 천진함을 만끽하고 있다.

작은 책상에 노트북이 나의 유일한 노리깜이 되어주고

아내는 성경공부용 탁자에 대학노트로 성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

티비로 보는 기독방송의 성경 말씀을 못 들어 불만이

이만저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전자상을 돌며 마땅한 물건을 찾고있으나

발품만 팔고 아내의 눈치밥을 먹고 있는 셈이다.

오늘도 다시 전자상을 돌면서 무엇보다 설치 작업이

문제였다.

생각다 못하여 내가 몇 개소의 구멍을 뚫고 작은 방까지

유선케이불을 연결하고 말았다.

결국 큰 방 티비가 이 작은 방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아내는 교회에서 돌아와 티비를 보고 기쁨이 가득하였다.

이 순간 마침 나의 타임머신은 우리들 신혼시절로 달리고

있었다.

1964년 가을 우리가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린 상하방의

월셋방,.

큰 방엔 이불장 하나에 윗방은 피아노 한 대와 부억엔 목제

찬장이 자산 목록의 주인들이다.

내가 야간대학교를 다니며 등록금 문제로 어려운 형편에

맞 벌이를 하여야 했으니,...

아내는 유치원보모에 집에선 피아노교습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서향집이라 겨울엔 추었고 여름이면

무척도 더웠던 기억들이다.

어려웠지만 우리들 가난을 몰아내고 창대한 청운의 꿈을

이루겟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노력을 하였다.

그 집에서 우리 큰 딸이 태어 났다.

빠꿈살이 집에 인형같은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귀엽던지,!

내가 우유를 먹이고 등에 업어도 주며 출근을 하면

보고 싶어 혼자서 웃는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퇴근시간을

기다리 곤 했다.

지금 막네 외손녀가 5살인데 할머니를 졸라 인형을 사주면

그 외손녀가 인형에 쏟는 정열을 볼때마다 우리에 첫 딸의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한다.

어제 같이 지난 세월,

40년을 훌쩍 뛰어 넘었다.

우리가 기적같이 살아온 날이 감사하고

두 딸네랑 아들네가 복되게 살고 있어 너무도 행복하다.

그래서 날마다 고마운 날을 맞고 있다.

지금 우리는 빠꿈살이 놀이방의 초심에서

아름다운 추억의 불씨를 활활 태우며 따뜻하기만 하여

참 좋다.. 

올 해에도 큰 외 손자 연세대 합격하고

그 아래 손녀 고등학교에손자 외손자 줄줄이 중학교를

들어 간다.

이 작은 빠꿈살이 놀이방에 할머니의 기도 소리로 

우리가정에 평안의 축복이 넘치고 있어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여라,

 

 

어린시절

누나, 형들과 빠꿈살이가

그렇게 즐겁기만 하던 것을,

 

쌀밥에 고기국 배 터지도록

퍼주고 받아 먹었지.

고운 옷 꽃신으로 이집 저집

마실도 가고,

호랑이 담요 가마타고

시집 장가가서 아이도 낳았네

 

나무자르다 손을 다처

호호 약을 바르며 병원인 양

주사를 맞으며 울고

 

하얀종이 가위질로 잘라

머리에 올려 늙은  할머니

되엇노라며

허리 굽혀 꼬부랑쟁이,

 

언젠가는 할아버지 죽었다고

눈에 침을 발라 울기도 하던 일,

인생길 생로병사라는 이치를

그 어린시절 배웠던가....

 

세월 따라 우리 각시

할머니 자리에 앉아서

검정 염색을 하는 저 마음 

청춘으로 돌아가는 가,

 

내 보는 눈에 물방울이 맺힌다.

 

 

2011년 1월 23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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