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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발자취

거짓의 징벌,

월요일이다. 창 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언 땅을 녹이면서 만물들이

날로날로 소생 하리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어제 결혼 예식장을 가서 느낀 점은 평생직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람들이 잠시 얼굴이나 맞대고

인사를 나누며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뿔뿔이

헤어진다는 우리들 세태가 너무 아쉽기만 하였다.

머리를 바라보면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살이 얼굴을

뒤집어 썼으니 서로의 꼴을 보기가 싫어진 것일가,?

어찌보면 이기적이거나 형식적인 관계가 된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여 본다.

얼마전 어느 자리에서 이런 애경사를 기피하할 목적

이랄까,?

집주소를 바꾸고 전화연락도 두절시킨 얌체적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입방아 찌는 여담을 나눈적이 있다.

사정이 있어 그럴 경우가 있을 것 이지만 세상인심을

탓하는 사례를 듣기도 하였다.

그래서 옛말에 정승이 권세를 누릴때는 그 집 개가

죽어도 문상객이 줄을 잊지만, 정승이 죽으면 조문도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도 나는 평생직장에서 맺은 관계나 살아 오면서

만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을 하며 여러 행사 자리를

열심히 챙기는 편이다.

하지만 경사자리보다는 점차 애사 쪽에 비중이 높아

가는 현실에 놀라기도 한다.

나는 나의 생활반경을 조금씩 확장하는 의욕을 부린다.

빛고을 타운을 비롯하여 평생교육원이나 문학 모임등,

서로간에 교류를 위한 인터넷관계에 이르기 까지

열정을 심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월요일을 기다림은 주말휴식에 이어 또 다른

의욕의 활로가 되어주리라는 기대감에서 이다.

어느 시인의 어머님께서 고된일을 많이 하시는 것을

보며 자식들이 좀 쉬시라고 말리면 죽으면 썩을 육신

살아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셧다는 글을 보았다.

최근에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책중에 믿줄을

친 대목을 상기하여 본다.

죽음도 미리 배우라는 글을 읽었다. 살아있는 것은

때가 되면 그 삶을 마감한다. 만약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바처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수 있다.

이런 글로 나는 숙연한 명상을 익히고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정성을 다하는 각오로 삶에 기쁨이

되는 노력을 하리라.

한편 월요일 아침은 티비나 인터넷 뉴스 보기가 겁이

날만큼 무섭기만 하다.

세상이 요란스럽게만 돌아가는 소식들이 그렇다.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등 독제국가의 질서가 무너지고

지구 곳곳에 환경의 재앙이 들끓고 있다.

한미훈련이 시작된다고 북한에선 서울을 불 바다로

만들겠겟다는 등, 위협을 퍼붓고 있다.

동토를 풀어갈 대화의 기미는 없고 원수를 무력화

때려 잡으려고 으르렁대는 판세가 국민을 두렵게 한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상승하니 우리 경제가 파탄대로를

달리는 것은 아닐까,?

전세대란에 구제역 마무리 역시 불안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물건너 가고 정치권의

민생을 돌 보겠다는 약속이 눈먼 봉사가 되어 버렸다.

원칙도 없는 형식만 인사 청문회인 것을,...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이 아니라 본다.

과학벨트라는 국가의 공약들이 위정자의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거짓을 옳다고 따르는 것은 부 도덕의 합리화이다.

부도덕이 창궐하는 세상,

국민여론을 거스르는 일은 카다피 손에 쥐어진 미친

무력나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에 봄은 희망이고 아름다운 조국을 위하여 도약의

열정을 튀우리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의지력이 강하고 어떻한 난관이 닦처도

슬기롭게 극복하는 자랑스러운 국민이다.

그 누구라도 선량한 백성들에게 거짓으로 사탕발림을

하지마라, 

땅이알고 하늘이 알게 될 그 거짓들을 밝혀 징벌하리라.

오늘도 나는 조국이 있어 깊히 감사하는 마음이다.

 

 

2011년 2월 28일 월요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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