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네집 나들이가 2일째로 접어 들고 있다.
큰 딸네집은 사위출근과 손녀딸 등교길로 일찍부터
분주하다. 아침을 먹고 작은 딸네집에 가면 유치원을
가는 손녀가 있어 몸 단장을 시키고 옷을 입히느라
부산하다.
아파트 앞 길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도 배웅을 하고 온다.
조용한 집이 되어 손님으로 간 우리들이 차를 마시며
내일 돌아갈 차표를 예약한다.
일산에 살고있는 친구 김준홍님은 핸 폰이 꺼저있다.
여행중인 모양인 듯 싶어 만남을 다음기회로 돌리고
오늘은 역곡의 누님댁을 찾아 갔다.
매형은 88세시고 누님이 84세가 되신다.
겨울이 몹씨도 추었기에 잘 지내시는지 궁굼하다.
가끔씩 전화를 드리지만 두분 귀가 점점 약해지시니
자상한 소식을 못 들여 서로간 답답하여서다.
겨울 내내 두분이 번갈아 병원신세를 질 만큼 위급한
상황을 넘기셨다. 하지만 오늘 가서 뵈오니 두 분의
건강이 아주 좋으신 편이다.
누님께서 손수 점심에을 생선국을 만들어 맛있게
잘 먹었다.
누님께서는 동생이 온돌장판을 사줘서 겨울도 따뜻
하게 잘 지내고 이렇게 건강하여 고맙다고 하신다.
우리들 살아가는 일 조카딸네 사는 이야기도 들로
4시간여를 즐겁기만 하였다.
누님댁 두 분노인과 조카 딸의 시집 사돈 댁에는
시 아버님과 장가도 않간 시숙, 두 홀로 노인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누님께서의 내외분이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 복이
라 하시는 만족감을 자랑하시기도 한다.
부부간에 이런 황혼을 맞고 계신 누님네가 너무 아름
답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 왔다.
우리 부모님께서 낳아주신 형제가 5남매 인데,
이제 누님과 내가 남고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누님은
나 하고는 10년이 차이가 난다.
누님이 형제간의 막네로 태어났다고 했으나 어머님의
46세에 내가 태어나 누님은 막네를 면했다며 아버지가
누님을 예뻐 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이 누님이 나에겐 우리 어머님만 같다.
내가 어릴적부터 부모님 일찍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의지하고 또 나를 지극한 돌보심으로 은혜만 입고 살아
왔다.
누님은 딸 하나 두시고 돌보시어 그 딸자식이 효녀로
고맙기만 하다.
두 시간을 달리는 전철에서 인파를 뚫고 오가는 시간,
저 많은 사람들,
과연 어떤 환경에서 살아 왔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들일까,?
목욕실에 온탕과 냉탕을 오가 듯, 평생 동안 몇 번씩
행복과 불행을 겪으며 오가는 일들로 살았을까,?
아니면 평생을 행복하게만 살고 잇는 사람들일까,?
시야가 움직이는 방향의 사람들을 둘러 보면서 온다.
이런 생각의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을 런지,...
사람이란 모두가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막연한 답을 내리며,
달리는 지하철 진동에 오늘 결석한 풍물 복습을 한다.
"인생길 운명의 박자" 랍시고 "짝~ 짜자~ ~를 읊조려
양 싄다리를 또딱이며 돌아 온다.
*싄다리 ~허벅지의 옛말
2011년 3월 7일 월요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