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큰 조카네가 온다는 소식이 오고 오늘 선산에서 만난다.
아침에 병원을 다녀 왔지만 차를 운행하기엔 무리라 생각이 든다.
아들네집으로 전화를 하여보니 다른 일이 없단다 .다행이다 싶어
나와 함께 동행을 권하자 잠시후 집으로 와서 아들차로 고향을 간다.
가는 도중 시내 메리어트 에식장을 잠시 들러 주재학님의 딸 혼사에
축하도 하여 주고 갔다.
아들과 둘이서 하는 봄날의 드라이브로 내 마음은 차분하기만 하여
너무 고맙고 좋았다.
아들이 아버지의 불편한 몸을 걱정해 주고 나 역시 나 혼자서 가려
고집한 것도 괜한 노욕이 듯,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고향 동네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나 서울 조카네는 주말 정체가
심히여 우리들 보다 2시간이나 늦어지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고 서울팀이 늦기에 우리들만 식당으로 가서
오랜만에 참개 백반을 시켜 먹었다.
자연산은 아니지만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개울에서 잡아 먹든 일을
생각하여 주문을 하였다. 우리어린날 고향엔 이 참게가 참 많았었다.
발전소가 있는 지방이라 물이 풍부하고 농사를 위한 보마다 음막을
짖고 늦가을 밤새 참게를 잡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논일을 하면서도 게구멍에 손을 넣어 잡기도 하던 꿈같은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값비싼 이 게장을 아들은 별로 맛을 느끼지 못하는 듯 싶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동네 앞에서 기다렸다.
고향 동네라지만 지금 찾아가 만나야 할 사람이 없는 타향촌이 다.
아들과 차 안에서 먼 발치로 고향 이곳 저곳의 아버지 어린 날 추억
들을 들려 주며 시간을 보냈다.
조카네가 도착을 하여 아들과 손녀 손자벌들이 첫 만남을 맞는다.
형님묘소 앞에 조카와 손녀 손자들이 자리를 펴고 얼굴도 모르는
이승과 저승간의 만남에 나는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형님의 묘비엔 1917년생이고 그 뒷 면에 이자리에 앉아 있는 손녀
손자 이름자가 색여진 것이다.
형님은 세상을 어렵고 외롭게만 사신 분이다.
청년기엔 천재라는 호감을 사기도 하여 군산세관에서 근무를 하시며
장래가 창창하였지만 일본군의 전쟁터로 가서 불치의 병을 지니고
오셧다. 그래서 그 불치의 병으로 불운하게만 사시다가 떠나셧다.
오늘 이자리를 하늘에서 지켜보신 다면 얼마나 기쁨으로 위안이 되
셨을까,...
곡 그러 하시리라 고 나는 믿었다.
그래서 조카와 그 자녀 손들이 할아버지의 영혼을 바라보며 인생길에
살아가는 여러 통로의 깨우침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이 손녀 자들을 어린날 잠시 한 번즘 보고 결혼식장에서 본
기억들인 데, 이렇게 장성하여 만나니 장하고 고마운 마음엇다.
날씨도 화창한 봄날에 만물이 소생하는 좋은 날 우리 가족중에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라 더 없이 자랑스럽 고 복되 날 이다,
요즘 새대에 이런 착한 마음을 갖는 것이 더 나를 감동케 해준것이
리라.
조카도 아버지의 불운에 외 가생활을 하면서 많이도 외롭고 불행한
지닌날이었기에 감회가 새로운 자리 엿을 것다.
이제는 이런 자식들 덕으로 아버지 묘소에 찾아 온 심정을 이해 할 수
가 있엇다.
저녁 식사라도 함께 나누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태인에 맛자랑 식당에서 우리고장의 특색이 담긴 참게백반,
떡 갈비로 좋은 자리도 하고 헤어젔다.
오늘 우리들 행사가 세상을 살아가며 얼마나 값지고 복된 날인가,...
사람이 산다는 것 만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배워 보는 기쁨을
포장하여 둔다.
세상의 역사는 선과 악이 겹치며 지나온 것,
우리들 가정사 역시 굴곡의 다사 다난한 발자취로 아롱저 있다.
과거의 잘 못을 알고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 야 한다.
그런점에서 선산의 조상님을 찾고 숭상하면서 조상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서로의 삶에 이치를 터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돌아 본다.
무엇보다 참 기쁨이고 마음에 신선한 일로는 우리 우정이 우진의
얼굴에 해 맑은 남매의 핏줄에 아름다운 정을 담고 온 점이다.
2011년 4월 9일 토요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