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치아를 하나 심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4개월 후 확인을 하여 보니 굳지를 않아 실패를
하고 어제로 예정된 것을 어제는 골프회 모임으로 오늘에야 가게
되었다.
빛고을 타운에서 아코디언을 하는 둥만둥하며 점심을 먹고 치과로
갔다.
의사선생님은 내 얼굴에 가리게 천을 두루고 마취주사를 여기저기
쑤셔 댄다. 얼마나 아파서 의자의 손잡이에 땀이 고인다.
살을 짖고 드릴을 드려 대고 구멍을 뚫고 있다.
내가 가끔씩 시멘트벽을 드릴로 구멍을 뚫던 생각을 하면 그 벽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그래도 나는 깨고 부수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는 식으로 견디어
냈다.
10일후에 실밥을 빼려 나오란다.
생로병사라는 말처럼 인생살이 살다보니 치아가 어긋나 고치는 일,
앞으로도 많아질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서울 누님댁에 편지를 써서 보내드렸다.
지난번 조카네가 온다고 하였더니 기뻐하신 일을 생각하여 그 날의
느긴점을 전해드린 것이다.
누님게서도 귀가 어두어 지시니 동생의 편지를 기다리신다.
받으시면 고마워 하시는 누님을 위하여 자주 편지를 올려 드린다.
누님전 상서
안녕하십니까.
지난 토요일은 재남 조카가 온 다고 하여 선산을 다녀 왔습니다
광주에서는 마침 세웅이가 시간이 나서 나와 함께 가게 되었고
재남이는 우정(딸)이와 우진(아들) 남매를 대리고 왔습니다.
토요일이라 고속도로가 막혀 약속시간 보다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재남이는 형님이 돌아가시고 처음인데,
나이 70줄에야 자식노릇을 한 셈입니다.
우정이는 40살이고 우진이도 35살로
우정이 아들은 고등하교 2학년이고 우진이 딸은 초등하교 3학년
이랍니다.
최씨 핏 줄이라고 재남이 딸과 아들이 아버지를 졸라 할아버지
산소나 가자고 하여 왔답니다.
그래도 과일이랑 막걸리를 사 들고 와서 묘소에 큰 절을 하기에
돌아가신 형님이 하늘 나라에서 보시고 기쁘셧으리라 믿었습니다.
묘소에 비석을 세워 두었는 데, 우정이 우진이 이름자가 적혀저
저희들도 고맙게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옆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 묘소에도 인사를 하여 할아버지 얼굴은
몰라도 이렇게 찾아 와서 우정이 우진이 마음씨가 착하고 복을
받겠다고 칭찬을 하여주었습니다.
재남이도 어린날은 외 가집에서 자라며 외가집안 사람들 눈치를
보며 마음이 외롭고 불쌍하게 큰 것이 이제야 이해를 해봅니다.
재남이도 자식들 두엇으니 이런 날도 잇고 해서 세웅이랑 인사
시키며 앞으로도 집안끼리 한번씩 만나는 기회도 만들자고 하였
습니다.
재돈이도 서울에서 식당을 하고 잇답니다.
그러나 전 같지가 않아 다른 업종으로 바꾸려고 한 답니다.
우리는 그날 선산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가서 세웅이가 식사를
잘 대접하여 보내주었습니다.
형님과 우리 부모님은 수 십년이 넘어서야 이렇게 이산가족을
만나는 복된 날이었다고 기도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재돈이는 딸 들이 32살 30살인데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나
결혼을 않하고 있답니다.
재남이도 머리가 백발이 되고 키도 작고 노인태가 나기에
참 세월도 빠르다 하며 옛날 일들을 돌아 보았습니다.
우정이는 미술학원을 하여 지내기가 좋다고 하며 우진이는
법무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이 되어 잘들 살고 있답니다.
우정이 우진이가 착하게 생겻고 남매가 너무도 좋은 사이로
저희들 다정하게 사는 모습이라 보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저희들 부모가 생전에 재물이나 덕을 못 주엇지만 자식들이
이렇게 효도를 하는 일로 우리 가문에 희망을 심어준다고
좋은 말들을 하여주고 떠나 보냈습니다.
재남이랑 우정이에게 누님 댁 전화도 알려 주었습니다.
저희들 살기도 바쁠 터인데,
낮설고 물설은 먼 길을 틈내어 와준 것을 효정이 엄마도
고맙다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합니다. 매형님과 건강하시고 식사도 잘
하십시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광주 동생이 올립니다.
2011년 4월 12일 화요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