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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발자취

아카시아 꽃이 피면,

03 어머니의 마음.wma [저작권위반의심, 본인만 확인가능]

먼저 "어머니의 마음" 음악을 클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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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차를 타고 다니며 먼 발치로 보는 아카시아 꽃,

어린시절 고향에서 저 꽃을 따 먹던 시절이 떠오른다.

꽃대의 목을 엄지와 검지를 누리고 쭉~ 잠아 당기면 주먹에

한 욱큼 튀밥같은 꽃이 쥐어 진다. 그 주먹을 입에 털어 넣는

순간 코끝에 그윽한 향이 먼저 스며들고  입속에 깨물어 질

때마다 달콤하고 쫄깃 하였다.

그 시절 우리들 간식이란 요즘처럼 과자나 빵 같은 것은 생각

을 할 수도 없었던 때라고 여겨진다.

철 따라 감자 참외나 수박 과일등이 유일한 간식이고 배곯음에

쑥개떡이나 산에 자연의 진달래 찔래순등을 먹던 기억들이다.

군산 도회에서 초등학교 4학년에 시골로 전학을 하여 친구들이

이런 꽃이나 나무 순을 먹는 것이 신기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냥 익숙하여 지는 것이었다.

그 시절 동네엔 토기를 키우는 집들이 많았다. 하얀 털에 빨간

눈을 갖인 순한 토끼는 우리가 풀을 주면 귀를 쫑곳 세우고 받아

먹는다. 조그만 입을 날래 놀리며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토끼를 키웠으면 하는 욕심을 부렸다.

어느 날 이웃 형님이 토끼 한 쌍을 키우라며 배메기를 준다.

집에와서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토끼장에 넣고 학교를 다녀 오면

풀을 뜯어다 준다.

그때 동네 강변으로 가면 아카시아 나무가 많았다.

낭떨어지에 자라는 나무라 언덕위에선 손이 닿아 잎 따기가 용이

하였다. 토끼들은 이 아카시아 잎을 좋아 하여 늘 따서 먹이고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가 나에게 배메기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우리가 한 쌍을 키워 가을에 두 쌍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순간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울고 있었다.

엄마 왜 울어 하며 어깨를 흔들었다.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날 괜히 엄마가 재수가 없게 울어서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진 기억이난다.

그리고 몇 일후 쪽재빈가 쥔가 밤사이 토끼 한마리를 물어 죽었다.

그래서 겁도 나고 엄마가 그냥 두라하여 아쉽지만 토끼 기르기를

그만 둔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배메기란 설명을 하여 준다.

옛날엔 사람들이 애기를 낳고 가난하여 기를 수가 없어 남에게 주어

키우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군산에 살며 이웃에 딸만 많은 집에

갓난 아이 하나를 우리 엄마랑 함께 다른 집에 가서 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순자라는 누님벌 아이 집이다.

만주에서 왔다고 하였고 방 하나에 여러 식구가 살며 아버지는

부두에 노동일을 가시고 식구들은 매일 집에서 성냥값을 만들고

있었다. 이 성냥갑은 접어진 종이에 풀칠하여 만들어 공장에 납품을

하는 일감이었다. 순자누님은 어린 동생을 업고 밖으로 나오는 날이

많았다. 내가 막네 아이를 물으면 죽엇다고 하면서 울곤 하는 것이

었다. 그 죽었다는 아이는 어머니가 이야기 한 갓난아이라고 먼 훗날

에야  알아 차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해방이 되엇고 그 해 일로

따지면 그 아이는 해방둥이다. 그때 어린날 해방둥이란 그런 이름도

있엇다.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토끼를 기르며 알게된 순자

누님네 갓난아이가 애처럽게 먼 기억으로 다시 살아 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남의 집에 가정부나 아니면 공장의 일터로 가던

시절이었다.

메스컴을 통하여 입양아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갓난 아이를 버리고

그 아이들이 외국으로 가서 성장하여 한국에 친 어머니를 찾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친모를 찾지 못하여 다시 외국으로 가는 보도

를 접하면 친모라도 선뜻 나설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모성애의 양심이

허락을 않는 경우도 있었으리라,

지금 세상은 사회단체들이 봉사적 차원에서 정부가 입양을 돕기도

한다고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남북 전쟁을 치룬 역사적 배경에 이산

가족이 많고 아직도 그 한을 풀지 못하여 안타까운 가정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집을 잃어 헤어진 가족들이 방송을 통하여 찾고 잇는 일 또한 

얼마나 많은 가,?

엊그제는 필리핀의 입양아라는 영화가 소개되어 보았다.

필리핀 역시 경제적으로 빈부의 차이가 심히여 가난한 집에서 아이를

나면 배메기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5월 가정의 달에 어머니 세상을 떠나신지 50년이 훌적 넘었다

지금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철없이 어머니를 괴롭히고 불효한 세월로

보낸 나는 아카시아 꽃이 피면, ...

그 꽃 말처럼,

"남몰래 바친 사랑"이란 아픔에 기억으로 어머님의 명복을 빌고있다.

 

 

2011년 5월 22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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