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지만 보람있는 일은 아빠라는 자리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아버지가 없이 자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버지의 부재를 느꼈다면서 아바지가
있었다면 내 삶이 어땠을지 궁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려고
애썼지만 항상 성공하지 못 했다고 하였다.
우리 아버지도 나도 그렇 했을까,?
그 책임을 다하는 노력을 하였다고 여겨 진다.
우리 아버지는 66세로 세상을 떠나 셨지만 나는 70을
넘기고 있다. 아버지의 은혜라고 믿는다.
우리 아버지 시대는 참 암울하고 고난의 길만 걸어
오셧다고 안다.
아마도 그 시절 아버지 모두에 그런 고통에 세월이
아니엿던가 한다.
나 역시 자식들 일이며 가사를 몽땅 아내에게 맏긴체
내 욕심 껏 樂으로 산것이 이제야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우리들 시절은 아이들을 추억꺼리가 되도록
아내와 함께 여러 방면에 신경을 쓰면서 가난하여도
나름대로 그런 실정을 감아하여 알뜰하게 챙겨 본
일들이 많앗다고 돌아 본다.
어린이 날이나 자라면서 우리들 모임에 자식들이
함께 즐기는 행사를 도모한 것도 자랑이 될 만 하다.
또한 아내는 아직도 자식들이 품안에 자식인양,...
무엇이던 못 해주어서 늘 걱정이다.
역시나 자식은 평생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그
책임이 아니가 싶다.
지금까지 못 한점 두고두고 잘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이름을 달기고 부끄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하루 종이 아버지를 위한 글 한 편을
써 보려고 머리를 싸맨다
아버지의 가훈
마훈둥이 어릿광
무서운 회초리에
목노아 시조를 배우네,
아버지의 선창
태산이 높다하되
이 초장기에,
돌림병으로 누님이 가고
하늘아래 뫼이로다,
징용간 형님의 전사소식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이 중장기는,
해방으로 죽은형 살아오니,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종장에 울리는
애절한 아버지의 퉁소 소리
아버지는 눈물 지으시고
나는 깔깔대던 먼~먼 기억,...
아침밥상에 죽이면
어머니를 꾸짖는 위엄
밥으로 힘을 얻으라 하네,
"언제나
산은 하늘아래 뫼이요,"
"아침밥이
든든해야 하루 기운이라."
60줄로 가신 한 된 여생,
아버지의
진솔하신 그 가르침을
평생에 우리들 가훈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네,
2011년 6월 20일 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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