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명절은 밖으로는 조용하고 집안이 부산한 듯 싶다.
그도 그럴것이 친척들이 찾아 올 식구가 없다. 다만 1남 2녀의
우리 자식들이 있다.
나는 형제로 세분 누님이 있다. 형님은 21년이란 차이로 내가
어려서 일제의 징용으로 남양군도 라는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형수씨가 친정으로 가는 바람에 조카들이 외가집에서
자라면서 살았다. 그렇게 형님네 가족은 오래전에 남남들처럼
되고 말앗다.
그 후 형님은 자바섬이란 곳에서 전쟁중에 상처를 입었고 그로
인해 전사를 한 것으로 전해와서 부모님들이 실망을 하기도
하엿다고 들엇다. 하지만 해방이 되어 돌아 오셨지만 정신병을
안고 오셧다. 형님이 세상물정을 모르시고 우리 부모님은 백방
으로 치료를 하였지만 가산만 무너지고 형수씨도 다른 가문에
재혼을 하고 말앗다.
우리부모님의 제사를 형님이나 조카들이 밑아야 하지만 마지막
길을 우리집에서 보내드렸고 형님 형편이나 조카들이 이를 감당
하기엔 불가하여 그냥 우리가 교회식으로 모셔온 것이다.
세월이가고 해마다 기일을 챙기기도 점차 환경이 바뀌고 이젠
설날에만 자식들과 추도예배로 모시고 있다.
오늘은 아내가 참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잇다. 내일에야 며느리가
와서 함께 준비를 하겠지만 혼자서 미리미리 다 하고 있어 옆에서
내가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
이런날엔 집안 분위기는 어릴적 빠꿈살이 같은 즐거움이 가득하다.
아내는 무엇에 도움이 필요하면 이섭자를 이순으로 개명을 해 가며
"이순아~ 여기 빈 그릇을 치우라~ "하며 어느 집 마님께서 머슴,
일꾼에게 명령을 하는 식의 웃음꺼리를 만들어 서로에 흥을 돋구곤
한다.
둘이서 살고 잇는 집, 우리들 세상인 것을 얼마나 좋은 일이랴,
딸네들은 시집 가문에 갈 것이고 아들만 우리와 명절을 하고 있다.
큰 것은 아니어도 아내는 알들하게 준비를 잘 하고 잇어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는 어마님이 어릴적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군에서 제대를 하던 해
돌아가셧다. 그래서 아내는 부모님을 모른채 만난 사이다.
그렇지만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들이 부모님의 정성으로 먹고
자란 것임을 알고 부모님께서 드시는 것은 아닐터이지만 아들네와
손자들이 함께 가문의 예절과 맛을 철저하게 챙겨주는 열정이 더욱
복이라는 고마움으로 담아 살고 있다.
안방에 내가 어린날 아버지 어머님의 가운데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우리집은 형님의 병환에 불운한 형편이어서 이런 사진이 집에는
없었지만 누님댁을 돌며 겨우 얻어온 사진을 합성하여 어느 화가가
영정으로 만든 것이다.
부모님 기일이나 명절이면 그리움에 추억을 돌아 보곤 하고 있다.
어느날 다섯살난 외손녀가 와서 신기한 듯 할아버지가 아이로 있어
웃기만 하던 기억으로 오늘은 졸시로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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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람소릴 보리라.
안방의 해를 묵은
사진틀에는
백수를 넘기셨을
세월의 영정
부모님과 함께한
어린 내 모습
귀여운 손녀 손이
얘가 누구야,?
할머니가 웃으며
할아버지야,!
환한 동심이 피고
조용한 뇌성,!
가문의 밥솟에는
고난을 태워
모진풍상이 숯된
빛의 눈물임을
아가야 훗 날,
저 바람소릴 보리라.
2012년 1월 21일 토요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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