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한우회란 모임에서 목포로 기차여행을 다녀 왔다.
전직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이 모임은 역사가 대단히 오래
되었다.
모두가 재직시절 친목을 위하여 조직된 모임으로 그때는
55세로 정년을 하였다.
회장님 같으신분은 85세로 퇴직을 하신 세월이 30년이나
지난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재임시에 선배님들의 회원들 모임기회
를 가끔씩 마련하면서 우리 사업소로 홍보 차원의 초청을
하여 (그 당시 17명 정도) 원자력발전소 견학을 겸한 위로
행사로 모신적이 있었다.
그런 계기로 나의 퇴직을 앞두고 선배님들이 초청형식으로
자리를 하여 타의반 자의반으로 내가 가입을 한 것이다.
더구나 나와는 연령차가 10년이상이라 재직시에도 나는 동생
이거나 아주 어린이 취급을 받는 편이었다.
그래서 늘 귀엽게 이섭이 ~하며 다정하게 사랑을 독차지 할
정도란 기억들이다.
나는 그런 분위기속에서 꿈을 펄치는 노력에 나를 더 이끓어
주신 선배님들의 은혜도 많았다고 돌아 본다.
늘 그런 고마움과 감사하는 나의 처신은 역시 선배님들도 좋게
받아 주시며 이런 모임까지 함께하는 일로 믿고 있다.
지금은 7명인데 그 동안 이사를 하셨거나 이미 고인이 되셨다.
광주송정역에서 목포까지 가면서 지난 이야기거나 창넘어
지나는 곳들이 재직시 관힐구역이거나 변한 모습들을 손가락
으로 가르키며 어린시절 수학여행 기분에 도취하시는 즐거움을
보았다.
더욱 오늘의 신바람은 날씨가 화창하여 노색의 허약함은 가려
지고 힘찬 활력으로 보기에도 참 좋았다.
1시간 거리의 기찻길은 예전의 완행열차보다 현대식 속도로
물론 차내가 옛날보다 눈부실만큼 화려하여 감동을 하시는 것,
좀 이색적인 일로는 화장실을 가면서 자동문을 여닫기에 애를
먹는 분도 있었다.
때는 새봄의 역동성인 여기저기 꽃들이 화려하였고 나주지역을
지나면서는 고장의 특색인 배농장의 하얀 배꽃들이 어여뿐 춤
사위를 방불케하는 만개의 진경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목포역에서 하차를 하여 호남선 종착역이란 표지 석을 보시며
지난 세월의 감회인 눈길도 있었고 구 한전 목포영업소 위치에서
지금은 없어진 건물을 손으로 그림을 그리시 듯.
자상하게 설명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우리는 영란 민어횟집에서 약주에 회를 들며 모임의 상징 친목
이란 아름다운 정감이 넘치기만 하였다.
오찬을 마치고 그래도 아직은 발걸음으로 유달산 성옥 이훈동
회장님의 기념관을 견학하고 다시 유달산 노적동 주위를 둘러
보고 목포역으로 돌아 와서 15시 출발 용산행을 타고 돌아 왔다.
갈때보다는 오는 차중은 조용히 옛날을 회상이나 하시 듯,
눈을 감고 자거나 옆 자리와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남기는 기차
여행을 마감하였다.
선배님들은 오늘의 여행을 만족하시며 이섭이 덕분에 오늘 좋은
여행 잘 하셧다고 찬사도 주신다.
모두가 이 모임으로 세상 마지막을 당하시는 그런 결의 같은
심정을 나는 선배님들의 표정에서 자주 읽어 보면서 더 좋은 일
들을 하였으면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지만 함께거나 혼자서 이런 기차여행이
늘 즐겁고 기쁨이 되어 준다.
나는 상록회관으로 가서 골프 연습까지 하고 집에 왔다.
엊그제 옥션 인터넷 쇼핑으로 질렛 면도날 주문 한 것이 도착을
하여 확인을 한다. 규격이 일치하여 기분이 좋다.
아침 한 번을 하는 면도, 전에는 전동식을 사용했지만 내 손으로
하는 것만 못하여 손 면도를 고집하는 나,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저녁엔 내일이 수요일이라 재 활용품으로 내놓을 것들을 챙겨
밖에 내 둔다.
병이거나 폐지등 매 주 마다 비워도 항상 그 만큼씩은 버려지고
있다. 물건들을 사거나 선물에 불필요한 포장등이 과다한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개선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 공원 복지관에 아코디언을 가는 날이지만 모임으로 그만
결석을 하였기에 잠시 혼자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2012년 4월 17일 화요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