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아내는 작은 손누레를 끓고 시장을 간다.
나는 앞길을 청소하고 시장으로 가서 아내가 산 물건들을 싣고 함께
온다. 언제나 재래시장은 장사꾼들과 손님들의 오가는 대화가 정겹다.
"이거 얼마요," 하면 체소전 할머니 손은 벌써 검정 비닐속에 물건이
담긴다.
"5천원이여," 하면 아낙 손님들은 그 걸 깎자고 한다.
장사하는 할머니는 한 주먹을 더 주며 됐다고 한다. 요즘은 채소들이
싱싱하고 먹음직스런 것들이 많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풋마늘에 고동이 길게 뻗어 올라 됀장에 찍어 밥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군침이 넘어간다.
오늘은 어바이날이라 좌판에 작은 나물들을 올린 할머니들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고 있다. 우리 어머니 그리움에 한 번 더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한 번도 못 달아드린 불효자식
이란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아내는 자식들이 준 돈으로 시장을 보고 아침상에 올린 찬들이 풍성
하여 기쁨이 되었다. 그리고 이웃 집사님이 상추를 갖어 와서 잘 먹으며
자주 이런 고마운 정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는다.
그 집사님은 조금전 아내와 나눈 이야기를 해 준다.
간밤에 집에 "모구 함마리가 들어와서 잠을 설첬다고 했단다.
이 집사님은 늘 구수한 사투리를 많이 쓰시기에 이웃간을 웃기게 한다고
소개를 하였다.
그렇다 우리의 고향에 사투리는 삶에 문화가 담긴 아름다운 정서라
믿는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남긴 삶에 애환 같은 사랑의 여운이 물씬
나는 그리움이 있고 타향에서 우리 사투리를 만나면 그는 고향사람임을
알고 반가워 대화가 통하기도 한다.
밥상에서 이런 사소한 우리들의 화재도 이웃간 정을 나누는 소재로
하루의 좋은 일을 밎는 소중한 웃음의 시발점으로 활짝 피운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조선은 8도가 모두 금수강산이고
백의 민족이 아니던가,
일제시대에 나라를 빼았기고 만주로 중국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던
시국엔 애국동포의 의사소통은 각 지방의 사투리가 젖줄이 되엇다고 본다.
6.25동란에 남북이 오가며 말이 달라도 동족이란 배곮음에 꽁보리밥도
나눈 백성들의 온정,...어느시절에 이 고운 사투리가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여 분단과 동서를 갈라 놓고 말았단 안타까움을 생각해 보는 밥상 머리,.
우리들은 저녁에도 자식들이 준 용돈으로 외식을 나갔다.
좋아하는 굴비백반으로 음료수를 두 잔 딸아 들고
"철없고 욕심쟁이 부족한 사람을 이처럼 백발이 되도록 어머님 마음으로
보살펴주고 사랑을 주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드린다"고에 건배로 올린다 "
빠꿈살이 같은 우리들 삶에 인생길,.아내도 그런 동감으로 감사하다,.고
답을 준다.
더욱 건강하고 평안의 복을 누리자고 좋은 자리를 하고 돌아 왔다.
밤 하늘에 별은 없어도 비가 오려는 검은 구름 사이로 황혼의 노을 빛을
아름다운 우리들의 발자취로 담고 온다.
2012년 5월 8일 화요일 맑고 흐림